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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왜 ‘4차 산업혁명’이 안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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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축적의 시간’의 진화



0002350805_001_20170123104603812.JPG?typ(※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2015년 9월,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이 함께 참여한 책 <축적의 시간>이 출간됐다. 한국 산업의 새로운 도전으로 “‘창조적 축적’ 지향의 패러다임”을 주창한 이 책은 반도체·조선·정보통신·자동차·해양플랜트·소프트웨어 등 여러 산업 현장과 사회 각 분야에서 폭넓게 읽혔다. 이정동(50) 서울대 교수(산업공학과, 기술경영·정책)가 이 프로젝트의 총괄자이자 대표 집필자였다. 이 책의 독자 중 한 명인 정재승(45) 카이스트(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는 뇌공학 분야를 이끄는 대표 학자로서, 뇌-기계 인터페이스, 뇌기반 인공지능 전문가이다. 두 사람이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만났다. 둘 사이의 대화를 이끈 고민은 ‘2017년 이후, 축적의 시간의 진화’다./편집자 주



자신의 생물학적 한계와 조건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공상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20세기 자동차와 컴퓨터에 이어 인공지능 로봇이 이제 ‘세상을 바꾼 기계’로 등장하고 있다. 미래는 항상 황홀한 멋진 신세계도 실망스러운 묵시록도 아니다. 갑작스럽고 어질어질하게 닥쳐온 제4차 산업혁명 물결에 야릇한 흥분과 경이, 불안과 충격이 교차한다. 산업과 기업, 사회, 사고방식의 관행…기존의 견고한 것들이 모두 인공지능 속에 녹아내린다. 19세기 초 러다이트가 기계와 싸우려했듯 로봇과 싸워야하는 어두운 여정에 우리가 들어서 있는지도 모른다. 이정동 교수가 먼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소비자가전전시회(CES)를 기사로 다룬 몇몇 언론이 ‘4차 산업혁명, 한국은 안 보인다’는 제목을 달았다.”

○ “4차산업혁명, 한국은 없다?” 정재승 교수는 지난해 말에, 틀림없이 곧 ‘4차산업혁명은 없다, 가짜다, 허구다’는 등의 얘기가 나올 거라 봤다며 말을 받았다.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데이터로 얼마나 축적할 수 있는지가 4차 산업혁명의 관건이다. 우리는, 바로 시작하고 싶어도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사물인터넷(IoT)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 기반이 많지 않다. 데이터 자체가 없고, 있는 정보도 사용하려 들면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비식별 데이터마저도 서비스에 사용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빅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키우지 않았고, 사물의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거라 했지만 표준화 노력도 없었고 제품도 나오지 않았다. 전통 제조업이 정보기술(IT)을 받아들여 제품·서비스를 혁신하는 게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다. 핵심 부품이나 물성 중심의 기존 사고에서 데이터라는 만질 수 없는 것이 중요하다는 쪽으로 제조업의 사고가 바뀌고 훈련돼야 한다. 물성과 데이터 이 둘의 결합·조합은 어려운 일이지만 서로 스며들어 성공하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산업 전반에 나타날 것이다. 해외 성공사례를 기다렸다가 뒤쫓아가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먼저 시도해보는 기업이 그 혁명을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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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왼쪽·바이오 및 뇌공학)와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오른쪽·산업공학과, 기술경영·정책)가 13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나 4차 산업혁명 등 우리 앞에 펼쳐질 변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둘은 상호신뢰의 구축과 실패를 포함한 다양한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빅데이터’의 맨틀이 우리가 사는
‘경제의 지각판’ 뒤흔들어
생산자와 소비자, 생산과 서비스
경계가 무너지는 혼돈의 시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아무것도 키우지 않았다
‘나중에 쫓아가면 그만’이라는
한국의 전략 더는 안 통해”

무엇을 축적해야 할까? 두 교수 모두 ‘도전적 시행착오 경험’이라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센서 등 첨단의 부품소재를 육성하는 것도, 아키텍터(원천 개념설계 역량을 가진 사람)를 기르고, 빅데이터를 축적하는 것도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꾸준히 시행착오를 해보도록 밀어주고 독려하는 쪽으로 사고방식과 사회적 인프라가 함께 바뀌어야 가능하다. 이것이 축적의 시간을 통한 진화 방향이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4차 산업혁명 시대 빅데이터가 맨틀이고, 과거의 제조·유통 비즈니스 영역과 기존 관행적 사유는 그 위에 떠 있는 지각판들이다. 저 아래 꿈틀거리고 있는 거대한 맨틀이 지금 지각 판을 온통 뒤흔들고 있다. 생산에서 애프터서비스까지 비즈니스 영역의 경계가 무너져 누가 생산자이고 소비자인지도 모호해지고 있다. 경계를 정의하기도 어려우니 자꾸 경계 바깥으로 나가봐야 한다. 과거의 성공 경험과 전문가의 조언만으로는 안된다. 자꾸 변경을 더듬는 시도를 하고, 또 그 도전경험이 소실되지 않도록 꼼꼼히 축적해야 한다. 동전을 놓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긁어서 100원짜리인지 500원짜리인지 알아가는 아이들의 놀이와 같다. 많이 시도해본 사람일수록 더 빨리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중국의 선전이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그런 시도가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있다. 꼭 성공하리라는 보장 없이 이런 저런 황당한 시도도 해본다. 우리는 이런 시도와 시행착오가 없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 한국은 없다’는 말이 나온 불안감의 정체일 것이다.”(이정동)

우리 제조업이 불안해하며 우물쭈물하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다른 나라들은 박차고 앞서나가고 있다. “명확한 비즈니스모델이 없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과감하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누군가 데이터를 활용해 돈 버는 것을 보고나면 뒤쫓아가는 문화다. 뒤쫓아가는 기업은, 더 투자해도 데이터가 부족해 성과를 얻을 수가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 등 제조업과 아이티의 융합 경험을 축적하는 시간의 양에서 성패가 판가름될 것이다.”(정재승)

0002350805_003_20170123104604176.JPG?typ구글이 개발하는 자율주행차. 앞으로는 생산업과 서비스업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번은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이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는 아니다. 기존 디지털정보화 시대나 지식기반경제와는 어떤 의미에서 단절이고 또 연속인 걸까? “디지털정보화는 ‘정보’가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비트의 시대다. 그 뒤에, 정보가 아니라 맥락을 갖고 사용되는 ‘지식’이 중요해졌다. 이제 맥락적 지식과 정보가 ‘물질’과 결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톰세계(사물인터넷)인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고스란히 다시 비트세계(빅데이터)인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다. 아톰과 비트가 일치되는 세상(가상현실·증강현실·로봇)에선 인공지능이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정재승)

지금 목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은 흔히 “이번은 다르다”와 가공할 위력의 ‘파괴적 혁신’으로 수식되곤 한다. 그 범위와 규모, 속도에서 예상치 못할 정도로 우리의 삶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격변 속에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경쟁력은 생산에서든 소비에서든 새로운 플랫폼을 설계하는 능력에 있다. 우리는 플랫폼의 틀이 되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역량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을 뒷받침하는 센서나 액추에이터(Actuator·동력을 이용해 시스템을 움직이거나 제어하는 기계장치) 등 핵심부품소재 역량도 약하다. 플랫폼 설계나 이것을 뒷받침하는 부품소재, 양쪽이 다 취약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이 더 클 것이다.”(이정동)

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산업의 체력 중 어디가 강하고 약한지를 테스트 하는 시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체력은 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사회, 그리고 사고방식에서의 체력도 포함한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소수의 전문가가 하향식으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혁신의 주체가 되는 ‘혁신의 분권화’가 일어나야 한다. 우리 산업과 사회를 지배해온 추격형 기성 패러다임은 분권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체제다.”

 혁명은 혼란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똑똑한 인공지능과 로봇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계가 똑똑해진다 한들 기계로부터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인간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한다. “세계경제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바프는 앞으로 미래는 큰 물고기가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4차 산업혁명은 허구이며, 단지 융합과 결합뿐이고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 없다고, 이것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냐고 말한다. 또 아무리 아이티가 발전해도 제조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실제로 인공지능은 아직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기술들을 융합하는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모으고 클라우드로 빅데이터를 모은 뒤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가 열심히 쫓아가면 5년 안에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실제로 시도해보고 경험 속에 축적되지 않는 한 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정재승)

정 교수는 우리가 ‘혁명의 전야’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기존처럼 분야가 정해지고 해결해야 할 고객서비스 문제도 명확하면 그 분야의 지식을 동원해 안정적 혁신이 가능하다. 그런 상태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그저 퍼즐 맞추는 정도의 혁신이 일어날 뿐이다. 이와 달리 4차 산업혁명기는, 분야는 명확한데 제공해야 할 서비스가 불분명하거나 혹은 그 반대인 시기다. 이런 혼란은 외부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오픈이노베이션으로 돌파할 수 있다. 지금은 아이티와 제조업 간 결합에서 분야도 뒤엉킨 채 총망라되고, 해결해야 할 제품·서비스가 뭔지도 잘 모른 채 가능성만 무한히 열려 있는 총체적 난국 상황이다. 혁명은 이 혼란의 끝자락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지금 ‘혁명의 전야’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고, 필요한 건 축적의 시간이다. 산업화 시기에 필요했던 축적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에게 경험이 축적되는 ‘인간 중심의 새로운 축적의 시간’ 말이다.”

 ‘밀도있는 축적’ “서구에서 시작된 4차 산업혁명 물결은, 앞으로 이런 식의 제품·서비스들이 가능해지는구나, 제조업이 아이티 기술을 받아들여야하는구나 생각이 들고, 국가는 거기에 맞게 규제 개혁에 나서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 좋은 충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전통 제조업이 아이티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바뀌어가는 데는 혼란이 수반될 것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 다른 분위기, 다른 문화이기 때문이다. 종의 다양성이 생태계 건강의 토대이듯 수많은 개인들의 다양한 실패·시행착오·성공의 축적된 경험, 그것이 곧 사회 전체의 ‘밀도 있는 축적’을 만들어내는 시간이 될 것이다.”(정재승)

정 교수는 지금 상황은 애플 아이폰이 등장하던 무렵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2008년 무렵 미국에서 아이폰이 나오고 2010년 한국에 들어올 때 아이폰 기술이래봤자 컴퓨터 기술을 핸드폰이라는 통신장비에 넣은 것일 뿐이고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거라고 사람들이 예측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특별하지 않았어도 그 후 얼마나 큰 삶의 변화를 만들어냈는가? 조금 빨리 준비한 회사는 리더가 됐고 그때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회사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앞으로 사람과 사람을 넘어 물건과 물건이 서로 연결되는 시대에는 다시 새로운 기회가 엄청난 조합으로 일어날 것이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건 아니다. “기술 선진국들은 30여년 전부터 인터넷과 정보기술을 결합한 이(e-)비즈니스와 자동화를 시작했다. 물리적 투자뿐 아니라 기업 조직과 관행,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문화도 거기에 맞춰 여러 가지로 바꾸어 보는 시행착오를 꾸준히 축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4차 산업혁명의 전망을 성숙시켜 왔다. 반면에 한국 산업과 사회는 지난 30년간 선진 기술을 벤치마킹하거나 최종 애플리케이션을 빨리 받아들여 가시적 성과만 가져오라고 요구하면서 성장해왔다. 물리적 변화는 받아들이지만 생각의 변화가 수반되지 못해서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해석하고 도전에 나서야 할지 두렵고 또 복잡하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풍토가 아니라 도그마를 회의하고 더 좋은 가설이 나오면 항상 인정할 수 있는 ‘열린 사회’라야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밀도 있는 축적이 가능하다.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개발 프로젝트 성공률이 중 99.5%에 이르고, 안전한 면세점 사업에 사활을 걸고, 공시족이 수만명에 이르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신호다. 조심스럽게 조율된 실험, 성공이 보장된 시도만 해서는 안 된다. 혁신은, 여기 저기서 실패도 해보면서 말랑말랑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체제가 긴요하다.”(이정동)

 기술계급사회 도래 어느 시대이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늘 가치와 윤리의 문제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기술이 바꿔놓을 사회경제 지형의 변화를 둘러싸고 우리는 이것이 ‘좋은 사회’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시대의 주인공은 고도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해본 아키텍트급 사람들일 것이다. 이들은 상상조차 어려운 막대한 보수를 받게 될 것이고, 반대로 로봇에 일자리를 위협받는 사람들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질 것이다. 아키텍처를 장악한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개도국의 격차도 더 크게 벌어질 것이다.”(이정동)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만든 기술이 불평등을 심화시키면 항의 한마디 없이 적응하며 온순하게 있을 리 없다. 이를 교정하고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피하기 위해 투표 등으로 저항하고, 기술을 후퇴·중단시킬 지혜와 능력도 갖고 있다. “거북이도 생각보다 빨리 헤엄친다는 말이 있다. 인간과 사회는 새로운 기술변화에 접해서 생각보다 잘 적응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싱귤래리티(인공지능이 빠른 자기계발 사이클 속에 비약 발전해 인간지능을 넘어 도약하는 기점)를 넘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다. 인간사회가 정치적 사고역량을 발휘해 자본·기계와 인간의 분배 몫을 공평하게 나누며 기계와 공존하는 방식을 어떻게든 찾아갈 것이다.”(이정동)

인공지능이 불평등을 심화시킬 거라는 두려움의 진원지로 정 교수는 거대 자본력을 꼽았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인간 고용보다 생산 효율적이므로 자본은 노동을 점차 대체해갈 것이다. 자본을 많이 가진 기업일수록 인공지능 혜택을 더 보게 될 것이고,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인공지능 기술을 잘 알고 활용하면서 전체 시스템을 장악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채 결과값만 받아들이는 사람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기술계급사회’가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독점·선점하고 있는 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회사가 다른 기업과 지구촌 다른 지역을 장악하는 현상이 지금보다 심화될 수 있다.”(정재승)

 ‘라이프롱 러닝’ 1965년 미 항공우주국(NASA) 보고서는 “인간은 비숙련 노동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70kg의 가장 저렴하고 비선형인 만능 컴퓨터”라고 했다. 인간의 본성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은 어떤 기계보다 훨씬 더 민첩하고 재치 있으며, 상대적으로 가볍고 에너지 효율적이다. “가만히 놔두면 불평등·양극화는 가속화할 것이다. 인공지능 기계·로봇과 싸우는 사람의 경우 백년 인생 삶에서 자기 몸과 지적능력이 인공지능과 경쟁할 수 있는 시기는 30년이 채 안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자본을 당해내기 쉽지 않다.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경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10대에 공교육, 스무살 무렵 4년간 학교 다니며 배운 것으로 남은 인생 시기를 버텨온 게 지금의 교육시스템이다. 이제 자기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고, 맥락을 이해하면서 기존의 지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핵심 역량으로 대두하고 있다. 살아오며 각각의 현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경험해온 40~50대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20대에 배운 지식만으로는 이제 남은 생을 감당할 수 없다.”(정재승) 기업이 로봇을 고용할 때 로봇세를 물려 그 재원으로 인간의 존엄 유지와 경쟁력 향상에 재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정 교수는 덧붙였다.

최근 발행된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 표지 기사가 ‘라이프롱 러닝(Lifelong learning)’이다. “이 주간지 표지만화를 보면 할아버지도 책가방을 메고 책을 보고 있다. 교육기관에서의 학습뿐 아니라 공식·비공식을 합쳐 사회 전체가 얼마나 학습하느냐는 총량이 중요하다. 우리의 학습역량이 다른 개발도상국 중에 매우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건 교과서를 암기하고, 선도자를 벤치마킹하는 추격능력이었다. 이제 스스로 시행착오를 해보고, 그 경험을 축적하면서 학습해나가는 역량이 필요하다. 특정 기간동안 교과서를 배우는 ‘교육’개념에서 평생 스스로 축적해나가는 ‘학습’개념으로 전면 전환해야 하고, ‘학습사회’가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산업의 프레임도 자본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진정한 창의를 위해서도 사람을 귀하여 여기고, 사람에게 투자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아키텍트가 주인공이 되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그렇다.”(이정동)

 신뢰와 책임 정 교수도 축적의 결과물은 사람에게 쌓인다고 강조했다. ”단순 지식을 활용한 낮은 수준의 분석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인간은 더 높은 수준의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러려면 몰입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계획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성패에 연연하지 않고 ‘실패 가능성이 있으나 성공하면 대박’인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몰입이 가능하다. 시스템이 학습·축적하는 것이 아니고 문제 해결은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사람에게 경험이라는 형태로 축적되어야 한다. 사람을, 나태할까봐 의심하고 관리 대상으로 보고 실패 책임을 묻고 누군가 희생양을 찾아온 기성 조직문화와 결별해야 한다. 물건을 팔고 나서도 소비자 고객의 제품 사용과정을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면서 기민하게 반응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 즉 애프터서비스가 아니라 온고잉(on-going) 서비스의 시대가 될 것이다. 신뢰와 책임의 두 바퀴가 없으면 4차 산업혁명의 맞춤형 서비스는 허상이 돼버린다. 책임감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도 필요한 자세다.”(정재승)

“축적의 시간을 견뎌내는데 가장 중요한 사회문화적 토양은 신뢰와 공감이다. 신뢰의 기반, 문제 제기하고 틀린 답을 제시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믿음에서부터 모든 축적이 시작된다. 과거 추격형 발전 모형에서는 신뢰 기반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빠르게 벤치마킹해 실수 없이 일을 빨리 해내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단기적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산업영역 사이의 변경이 불확실하고 더듬으며 가야하는 상황이다. 변경을 탐색하다가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종이 한 장의 약속, 법과 제도가 잘 지켜진다는 신뢰도 중요한 사회 인프라다.”(이정동)

초연결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광범위한 협력과 관계맺기에 기반해 있다.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의 책임도 중요한 시대이다. “4차 산업혁명은 어디가 또 누가 생산자이고 소비자인지 경계가 모호한 세계다. 예컨대 공유택시서비스 ‘우버’만 보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상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말하자면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책임과 신뢰가 중요하다.”(이정동)

“작년 ‘촛불정국’은 우리가 신뢰 기반과 정부·기업의 책임감, 합리적 의사결정이 완벽하게 무너진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4차 산업혁명을 따라 잡는데 있어 우리 사회의 결핍이 무엇인지 여실히 경험한 해였다. 예컨대 정부 주도형 정보보안 규제 아래서 기업은 그것만 충족만 하면 책임을 다했다고 여겨왔다. 그 뒤의 책임은 정부가 져온 셈이다. 정보보안 책임을 기업에 맡기고 제대로 관리 못하면 모든 책임을 기업이 지게 하자. 그래야만 기업마다 데이터 보안투자를 많이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신뢰하고 고객 맞춤형 비식별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 개인의 경우는 대담하게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사회가 (기본소득 등을 통해)실패로부터의 회복탄력성을 도와야 한다. 그래서 사회안전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정재승)

 익숙한, 낯선 “지금은 이미 본 듯한 기시감(deja vu)의 시대가 아니라 낯선 미시감(jamais vu)의 시대다.” 이정동 교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것인데도 낯설게 보이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별 문제없이 우리는 지난 40여 년간 선진국의 설계도를 기초로 투자하고 매뉴얼대로 생산하고 수출하며 빠르게, 또 실수 없이 성장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게 아닌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혼란도 4차 산업혁명의 물결도 우리 마음을 흔들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까지 한국 산업과 사회를 발전시켜온 우리의 열정은 인정하되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은 이제 바꿔야 한다.”

이 교수는 또 ‘다양한 축적, 다양한 측정지표’를 강조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분야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와 아이디어들을 관용하고 품어주며 축적해가야 한다. 심지어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지표도 다양해져야 한다. 가수·학자·기업인으로서 각각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면서모두가 자기 분야에서 ‘심층’을 가질 때 새로운 것이 축적될 수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변경이 흐릿하고 융합적 성격이 강하다. “정말 가치 있는 융합은 각 분야에서 초절정의 고수들, 소위 프로들이 모여야 만들어진다. 여기서 프로는 특정 전문기능을 가진 사람이기보다 자기가 붙들고 있는 문제를 놓지 않고 끝까지 가 본 사람을 의미한다. 엔지니어든 가수든 누구든지 자기분야에서 깊이를 축적한 프로들이 다양하게 많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융합도 잘 일어난다. 이것도 ‘조금’ 알고 저것도 ‘조금’ 아는 사람들끼리는 절대 독창적인 융합을 만들어낼 수 없다. 단적으로, 각 부서를 돌며 순환보직하면서 정기 승진하는 기업조직 형태에서는 프로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융합이 생기지 않는다.”(이정동)

이 교수는 또 ‘사일로’(Silo·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조직 부서)에 갇혀서는 융합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매뉴얼대로 하는 과거의 실행중심 발전단계에서는 사일로 조직문화가 각자 자기 역할만 빠르게 실행하고 그것들을 다 모으면 되는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경계를 돌파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꼭 필요하다. 그래야 괴짜형 고수급 프로들이 생존할 수 있고, 사일로를 건너뛰는 창의적 융합이 탄생한다.”

이 대목에서 정 교수는 두뇌의 기초체력, 즉 ‘기초지력’ 얘기를 꺼냈다. “기술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2, 3년 후 미래를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4차 산업혁명 대응의 단기적 전략과 적응력은, 역설적으로 장기 관점의 기초 실력에서 나온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핵심 경쟁력은 사람들의 생각하는 능력, 즉 기초지력에 있다. 논리적 추론과 맥락적 이해,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 등을 바탕으로 한 문제해결 능력, 깊이 있는 자아성찰과 철학적 사고 말이다. 단기적 시야를 넘어, 기초지력이 훌륭해야 변화에 휩쓸려가지 않고 역동적인 상황 변화에 잘 대응한다.”

 ‘마음의 감옥’ 언제나 문제는 기계 자체가 아니라, 그 기계를 어떤 목적에 또 어떤 방향과 속도로 사용하는지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빠른 파괴와 혁신 물결 속에 개별 기업의 성공과 실패의 신진대사 역시 더 빨라지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 전체를 하나의 생태계로 간주하고, 생태계 전체의 활력을 중시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대담한 기업가적 시도가 더 많이 일어나고, 그 중에서 우수한 것이 살아남고 네트워킹하면서, 시행착오의 교훈을 꾸준히 축적해가야 한다. 이러한 진화 메커니즘이 살아 있으면 한국사회 생태계는 더 건강해지고, 장기 생존하게 된다.”(이정동)

이 교수는 ‘빨리 빨리’와 ‘실수 없이’, ‘메뉴얼대로’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동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의 감옥’처럼 자리잡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서 창의와 도전이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여전히 ‘실수 없이 빠르게 창의적이 되라’라고 요구한다. 이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지금의 시대정신이고, 이 변화를 이끌 축적 지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시행착오는 자기 혼자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실패는 전형적인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공공재 가치의 확산·축적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이끌 리더십이 절실하다.”

정 교수는 리더십 이외에 ‘세계시민 의식’, 즉 지구인으로서의 사고와 기여를 강조했다. “한국형 알파고, 한국형 인공지능 왓슨을 만들겠다는 선언은 부질없는 일이다. 실리콘밸리에 세 명이 모여 조그만 스타트업을 만들어도 그들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유용할 제품을 최전선의 최적화된 기술로 성취해 제공하려 애쓴다. 일국 사람들한테 잘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을 통해 세계 시민의식을 갖고 전 기구에 기여하려 한다. 그래야만 가장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전지구인들이 처한 글로벌 이슈에 관심 갖고, 지구 환경에 기여해야 한다. 비전과 도전의 사이즈를 키워야 한다. 한국형에만 만족하면 5천만 명의 시장을 벗어날 수 없고 다른 나라의 맹공을 받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전지구적 문제를 세계인과 함께 고민하고 국가와 민족을 넘어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해 인류에 기여하려는 사고가 필요하다.



 

<한겨레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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